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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 오고 싶었던 이유 단 한가지밖에 없어요. 응원받고 싶어서 왔어요.”
12살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박상희(39)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울먹였다. 매주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모이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화요집회’에 참여하려 광주에서 300㎞를 왔다고 했다 전주고려저축은행 .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의 변화 앞에 잘 대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막연하고 불안하다”고 상희씨는 말했다. 듣고 있던 선배 부모 30여명의 눈시울이 따라 붉어졌다. 김종옥 전국 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위원장이 분위기를 추슬렀다. “이 시기에 우리 부모들 다 ‘자다가 벌떡’ ‘자다가 벌떡’ 하잖아요, 그렇죠?” ‘선배 부모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녀교육비소득공제 ‘잠 못 드는 밤들, 세상에 아이와 나만 남겨진 것 같은 고립감’을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입을 모아 전했다. 그런 부모들이 매주 화요일 모인다.
김승섭 서울대 교수가 이끈 장애와 건강 연구팀(김자영·김지환·팽은지)이 지난해 12월 발달장애인 부모 227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발달장애인 부모의 돌봄부담, 사회적 환경과 건강 실태조사’(실태 조선대학교 국가장학금 조사)를 8일 보면, 부모 모임에 참여하는 엄마의 우울 증상은 돌봄 기간이 늘어날수록 큰 폭으로 나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참여하지 않는 부모의 우울 증상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는 비중이 28.5%에 이를 정도로 극도의 우울을 겪는 발달장애인 부모에게 만남과 연대,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경 부산개인회생제도 험이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사회적 소수자가 모인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조사 결과는, 이들에게 사회적 고립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또한 드러낸다.
의지할 사람 없다, 52.2%
지적장애를 지닌 둘째 수연(19)을 키우는 엄마 박윤정(52)씨가 9년 전, 수연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 손팻 생애최초구입자금대출 말을 들고 서 있던 때를 기억하며 말했다. “외딴 섬, 아니 섬은 딛고 설 땅이라도 있으니 부표나 뗏목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세상에 오로지 수연이와 나만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시절 윤정씨는 수연이가 친구들에게 장애 비하가 섞인 욕설과 폭행을 당하고 있는 정황을 파악하고 학교와 수사기관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저 사과받고 싶었다. 학교는 ‘조사해서 아니면 전학 갈 거냐’는 태도였고, 가해 의심 학생 부모들은 수연의 장애를 탓했다. 윤정씨는 부끄러움을 견딘 채 학교 앞 1인 시위를 감행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세상에 수연과 나, 둘 뿐이었다.
실태조사 결과 발달장애인 부모 가운데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52.2%에 달했다. 부모 53.1%는 ‘내 주변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문장에 “그렇다”고 응답했고,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긴 하지만 나와 함께 있지는 않다’는 부모는 56.3%였다. 비슷한 질문을 통해 파악하는 사회적 고립상태에 놓인 국민은 6%(2023년 기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도로 추정된다. 잦은 돌발 상황과 돌봄 부담에 주변 도움이 한층 절실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고립 상태가 심각한 상태다.
그때 윤정씨는 지인 소개로 부모연대에 연락해 상담했다. 부모연대는 기다렸다는 듯 ‘같이 1인 시위에 나서주겠다’고 했다. 수연이 문제로 교육청과 면담하는 날, 윤정씨 옆에 김남연 부모연대 서울지회장이 앉았다. 모자를 벗자 삭발한 맨머리가 드러났다. “‘이 사람들 누구지, 누군데 자기 일도 아닌데 내편이 돼주는 거지’ 싶었어요.” 김 지회장과 부모연대 회원들은 그때 서울시청 앞에서 삭발을 이어가며,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요구하다가 달려온 참이었다. 윤정씨가 부모연대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다.



모임 참여로 갈리는 우울 궤적
부모연대의 화요집회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지난달 29일 찾은 집회 현장에서도 “아이가 취업했다면서요? 자랑 좀 해주세요” “또 보네요” 하는 예사로운 대화가 오갔다. 엄마와 함께 온 발달장애 자녀가 상체를 위아래로 흔드는 상동 행동(반복적 행동)을 해도 누구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황미연(가명·56)씨가 얼마 전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전했다. “선배 엄마가 ‘우리 아들 50대 돼서 치매가 빨리 오면, 나도 80대니까 같이 요양원 들어가면 딱 되겠다’기에 ‘언니 그 방법 있네’ 맞장구 치고 깔깔 웃었어요. 남들은 한심하고 불쌍하게 보겠지만 우리끼린 그런 공감이 치유가 되는 거예요.”
발달장애인 부모 가운데 자녀가 장애 진단을 받은 뒤 돌봄 기간이 15년 이하인 여성(1426명)을 추려 조사해보니, 부모연대 등 부모 모임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 우울 증상을 겪는 이들은 해가 갈수록 가파르게 줄었다. 지친 엄마가 모임을 찾는 경우가 많은 만큼, 돌봄 기간 0~3년 차 모임 참여 여성 중 우울 증상을 겪는 비중은 76.9%였다. 하지만 이 비율은 곧 크게 떨어져 4∼6년 차인 경우 64.8%가 우울 증상을 보였다. 돌봄 기간 13~15년 차가 되면 우울증상을 겪는 비율은 57.8%까지 내려갔다. 반면 부모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부모 중 우울 증상을 겪는 이들의 비율은 비슷한 수준을 지속해 돌봄 기간 0~3년차(64.3%)와 13~15년 차(61.3%)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부모 모임 참여가 우울의 궤적을 가른 것이다. 연령, 소득, 결혼상태 등 다양한 주변 조건들을 보정한 결과다.
부모들은 그 배경으로 자녀의 장애가 일상적인 대화 소재에 그치는 편한 분위기를 우선 꼽았다. 미연씨는 “걱정되는 일이 있어도 엄마들하고 농담하듯 주고받다 보면 우울에서 빠져나온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돌봄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엄마들이 주는 정보도 안정감을 준다. 윤정씨는 “하다못해 복지카드가 있으면 지하철 무료 승차가 가능한 것만 알았지, 어떻게 쓰는 줄을 모르다가 부모연대에서 배웠다”고 했다. ‘자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생기기도 한다.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가진 딸을 돌보는 강복순(60)씨는 “선배 엄마들 얘기를 듣다가, 우리 애도 이렇게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봤다”고 했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모여서 목소리를 낸다’는 경험 자체가 주는 위로를 자주 언급했다.
함께 외쳐 이뤄낸 농성의 기억
윤정씨가 부모연대 사람들을 처음 만난 9년 전 이맘때,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싶었던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내가 아니면 돌볼 사람 없는’ 자녀들을 데리고 서울시청 북문 농성장에 머물고 있었다. 2016년 5월4일부터 6월15일까지 42일 동안 이어진 노숙농성에서 30명 가까운 부모가 삭발하고 단식했다. 발달장애인이 성년이 된 뒤에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등 여러 자립 지원 대책을 요청했다. 복순씨도 그 시절 서울시청에 머물렀다. “거기 있으면 살 것 같았다”고 했다.
기적처럼 서울시는 농성 중인 부모들과 면담하고 관련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부모들의 요구가 전폭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현재 서울시 25개 모든 자치구에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가 만들어지는 등 변화의 계기는 마련됐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다 같이 모여서 했잖아요. 내 자식만 잘되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 미래에 다 도움이 될 일을 해낸 거라 희망이 컸어요.” 복순씨가 미래를 더는 ‘고통으로 점철한 우울한 것’으로만 여기지 않게 된 그날의 기억을 말했다.
그로부터 9년 뒤, 윤정씨의 딸 수연도 이제 성인이 되어 학교 폭력의 상처를 딛고 성악가가 됐다. 부모연대 모임에서 발달장애인 성악가 그룹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을 보고 성악을 시작했다. 윤정씨가 말했다. “힘들 때 안 좋은 생각 많이 했는데 그럼 이런 모습 못 보는 거였잖아요.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이 수연이 모습에 힘을 받는다는 얘기를 하실 때 제일 행복합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