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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둘까? 책방지기인 나는 쇼츠 중독자가 됐다.
인구 1600명인 경남 남해 상주면 책방 앞 골목, 대체로 길고양이만 다닌다. 반려견 몽덕이가 짖어 혹시나 손님인가 보면 치즈냥이 지나가고, 또 짖어 나가보면 고양이가, 그것도 아까 그 고양이가 몽덕이를 조롱하듯 천천히 어슬렁거린다.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번 달은 어쩌지?
어쩌다 들어온 손님 여섯 명이 몽덕이를 만진다. 배, 귀, 엉덩이 꼼꼼히 쓰다듬는다. 몽덕이는 스르륵 눈을 감으며 누운 채 앞발을 올린다. 겨드랑이를 긁으라는 거다. ‘저 정도 만졌으면 설마 책 한 권은 팀워크 사겠지’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그냥 간다. 책을 파는 것보다 몽덕이 몸 부위별로 가격표를 붙이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상주 찾은 베스트셀러 작가 와타나베 부부
책방 일은 눈송이다.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일을 나누는 게 더 일이 될 거 같은데, 쌓여 어깨를 무너뜨린다. 견적서, 회계 등 엑셀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게 신용불량자회복카드 엑셀은 텃밭이다. 내가 숫자를 적어두면 엑셀 밭에서 자라거나 죽는 거 같다. 포스기에 뜬 숫자를 그대로 옮긴 거 같은데 나중에 자료 제출하려고 보면 숫자가 안 맞는다. 북토크 포스터 만들고, 홍보하고, 청소하고, 책 주문하고…. 퇴근하면 진이 빠져 아무 에너지를 들일 필요 없는 쇼츠를 보며 실시간으로 뇌 주름이 반질반질해지는 걸 체감한다.
연체자무직자 2025년 6월, 그나마 남아 있던 정신마저 들락날락했다. 베스트셀러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쓴 와타나베 이타루, 와타나베 마리코 부부 북토크 때문이다. 이들은 17년간 일본 시골에서 ‘이상한 빵집’을 했다. 고택에서 채취한 천연 누룩균과 농약을 쓰지 않은 농산물로 빵을 만들고 숙련공의 노동을 존중하는 가격을 붙여 팔았다. 사람을 포함해 모든 걸 시중은행이자 상품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이윤을 쌓아가는 자본주의를 넘어, 균처럼 순환하는 경제, 이윤은 남기지 않고 사람은 남기는 실험을 벌였다. 이들의 ‘시골 빵집 게릴라전’을 담은 책은 대박이 났다. 북토크 신청자가 몰려 장소를 책방에서 상주면 종합복지센터로 옮겼다.
그렇다. 종합복지센터다. 그런데 나는 왜 주민자치센터로 장소 공지를 했단 말인가. 은행직장인대출 이 오류를 북토크 열리기 2시간 전에 알았다. 책방엔 프린터기가 없어 옆집에 가 바뀐 주소를 크게 적은 포스터를 출력한다. 차를 몰고 주민자치센터로 간다. 달랑 한 장 뽑아왔다. 부족할 거 같다. 다시 차를 몰고 책방 옆집으로 가 프린트를 더 한다. 그 전에 포스터 만들며 내가 한 삽질까지 설명하다가는 내 목을 조르고 싶어질 거 같아 생략한다. 이날 북토크에 부산, 경남 통영·하동·산청, 전남 곡성 등지에서 64명이 왔다.



경남 남해 상주면에 있는 은모래마을책방에서 책에 사인하고 있는 와타나베 마리코.


그들이 대박 난 빵집을 접은 이유
와타나베 부부는 충격 뉴스를 전했다. 2024년 빵집을 접었다고 했다. 책이 대박 나고 손님이 몰렸다. 빵을 더 만들어야 하니 고용을 늘리고 이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니 마케팅을 벌여야 하고 다시 빵을 더 만들어야 했다. 코로나19 때는 전국에 택배 발송했다. “누가 만드는지도, 누가 먹는지도 모르는, 이런 관계를 계속해가는 게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마리코) 이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나? 아니다.
누룩균은 조금이라도 오염된 환경에선 죽어버린다. 부부는 누룩균을 찾아 세 번 이사한 끝에 돗토리현 깊은 산속 지즈초에 자리 잡았다. 건물을 네 채 사 2024년 ‘다루마리 연구소’를 열었다. 한 채 값이 500만원이다. 각 건물에 맥주, 빵 공방을 만들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했다. ‘누룩이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미지로 분산-순환형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이타루는 “너무 귀중해서 팔고 싶지 않은 걸” 만들 계획이다. 빵과 맥주를 함께 만들며 식재료가 순환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리려 한다.
오만 삽질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지만 ‘신체성’과 ‘수행’이란 두 낱말이 마음에 박혔다. 인간으로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을 움직여 체득하는 신체성과 지성은 따로가 아니에요. 이 둘을 오고 가야 인간으로서 행복해지는 힘을 쌓을 수 있어요.”(마리코) 책이 대박 난 뒤 가방끈 긴 도시 청년들이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빵집에 왔는데, 몸 쓰는 일에 미숙했다. 마리코는 경쟁의 반대는 수행이라고 했다. 이타루의 “도저히 팔 수 없이 귀여운 빵”들은 그 수행의 증거다. 왜 시골 마을일까? “어떻게 하면 경쟁 체제에 올라타지 않고 수행으로 살 수 있을까? 시골에서 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마리코) 수도권에 평생 살다 남해 상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된 나는 ‘대안의 가능성’으로 지역이란 그의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동의한다. 체감한 것들이 있다.
‘내 칸을 짚어보던 삶’을 떠나
“6억이야!” 수도권에 사는 친구가 전셋값 이야기를 하는데, 현타가 왔다. 내가 얼마 전 이사 온 남해 집은 방 세 칸짜리인데 매매가가 7천만원이다. 해가 잘 드는 이 집에서 나는 결핍은커녕 부유하다 느꼈는데 이 통화를 하면서 갑자기 가난해진 거 같았다. 수도권에서 삶은 모눈종이 같았다. 동네에 따라, 같은 동네라도 아파트 이름에 따라, 같은 아파트라도 동수나 층수에 따라 계급이 나노 수준으로 갈라졌다. 직업, 학력까지 넣으면 간단한 방정식의 답처럼 내 삶의 등수가 나오는 것 같았다. 누굴 만나건 모눈종이 몇 번째 칸인지 맞대보는, 나 스스로 내 칸을 짚어보는 긴장이 있었다. 남해 상주면에선 그렇게 서로를 재기 힘들다. 흰색 페인트를 바른 순둥이네 집이 붉은 벽돌로 쌓은 몽덕이네 집보다 비싼지 줄 세울 수 없다.
“왜 그런 사람이 남해 살아?” 여기 사는 명문대 출신 박사 얘길 했더니 수도권에 사는 지인이 이렇게 되묻는다. ‘그럼 그런 사람은 어디 살아야 하는데?’라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참았다. 악의가 없음을 아니까. 수도권과 지역 사이 줄 세우기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질문이 튀어나오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줄세우기는 개별성의 숨통을 죄고, 개별성이 사라지면 통제하기 더 쉽다.
오기가 생긴다. 이 남쪽 끝 책방이 망하지 않고 버텼으면 좋겠다. 모눈종이 따위 이탈해도 잘 산다고, 여기는 ‘오래된 미래’라고 떵떵거리고 싶다. 북토크가 끝나고 뒤풀이, 남해에서 돈가스 가게를 하는 일본인 료타가 기타를 잡았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 밤, 일본어로, 한국어로, 제각각의 목소리로 ‘떼창’했다.
김소민 은모래마을책방지기/희망제작소 연구위원



경남 남해 상주면 종합복지센터에서 열린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북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