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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98세로 숨진 무라카와 시게오씨가 식장에 설치된 TV 스크린에 나오더니 “오늘 저를 위해 모여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나 생각해주시고 미소와 눈물을 보내주셔서 그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인이 문상객을 위해 생전 직접 촬영한 영상 편지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무라카와씨가 죽은 뒤 만들어진 변동금리 고정금리 AI(인공지능) 영상이었습니다. 실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영상이었습니다. 고인이 눈을 깜빡이고 몸을 움직이기도 하며 마지막 멘트 땐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습니다. 유족들은 “그리움이 크게 누그러졌다”고 했습니다.



일본 관혼상제 업체 알파클럽 마이크레딧 1등급 무사시노가 지난해 12월 개시한 'AI(인공지능) 고인' 서비스 포스터/알파클럽 무사시노


일본에서 고인이 생전 촬영한 것처럼 AI로 영상을 제작해주는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AI 고인’입니다.
관혼상제 업체 ‘알파클럽 무사시노(アルファクラブ武蔵野)’가 지난해 12월 신탁등기 관련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생전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바탕으로 AI가 고인의 생동감 있는 얼굴과 목소리, 말투 등을 재현해 최단 3일이면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정교한 영상이 만들어집니다. 제작비는 9만8000엔(약 94만원)부터. 지난달까지 이미 수십 건의 의뢰가 접수됐다고 합니다.
AI 고인이 등장하는 곳은 주로 장례식이고, 대기업 대출상담신청 창립 OO주년 행사 때 고인이 된 창업자를 이벤트처럼 등장시키기 위해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 AI(인공지능) 기업 ‘뉴지아(ニュウジア)’가 제공하고 있는 ‘대화형 AI 고인’ 서비스 포스터/뉴지아


최근 현대위아 합병 사망한 아버지를 AI 고인으로 만났다는 일본인은 지난 1일 요미우리신문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인사해줬으면 했다. (아버지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고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생전 작성한 일기나 소셜미디어에 남긴 게시글이 있으면 고인의 인격을 재현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영상 편지와 다르게 쌍방 소통이 가능합니다.
일본 AI 기업 ‘뉴지아(ニュウジア)’가 이른바 ‘대화형 AI 고인’ 서비스를 최근 개시했습니다. 카시와구치 유키히로 대표는 “한 직원이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던 것이 (개발) 계기가 됐다. 사진 기술이 개발돼 영정이 만들어졌듯 지금은 AI 기술이 개발됐기에 새로운 애도 방법이 나타날 때”라고 했습니다.



AI(인공지능)로 재현된 일본 전설의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news.gamme.com


사망한 유명인을 AI로 ‘되살리려는’ 일도 있습니다. 2019년 NHK 연말 간판 가요 프로그램 홍백가합전 무대에 전설의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가 올랐습니다. AI 고인을 통해서였습니다.
오리타 아키코 일본 간토가쿠인대 정보사회학 교수가 최근 국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무라사키 시키부(겐지모노가타리 저자)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 막부 초대 쇼군)를 AI로 재현한 모습을 보고 싶으냐’고 묻자 30%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오리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종전 조사에선 AI 고인에 대한 긍정 의견이 극소수였는데 생성 AI 기술이 확산하면서 친밀감이 높아졌다”고 했습니다.



2023년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재생된 영상. AI(인공지능)로 복원한 창업주 정주영 선대회장의 육성과 함께 사진이 나왔다./뉴스1


세상을 뜬 소중한 사람을 이승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는 AI 고인 서비스. 한국에서도 가수나 기업 창업주 등 유명인을 상대로 수차례 구현된 적 있어 낯설지 않으시죠.
고인 입장에선 어떨까요. 죽은 육신이 AI를 통한 가상의 모습으로 재현되길 바랄까요. AI가 뱉은 말을 진짜 고인이 한 말인 양 기뻐하고 슬퍼하는 유족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요.
사자(死者)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AI 고인을 두고 윤리 문제를 들먹이는 건 나이브한 지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찬반(贊反)이 갈립니다.



2022년 AI(인공지능) 기술로 복원된 가수 임윤택/JTBC


요미우리TV는 AI 고인을 두고 “(고인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죽은 자의 존엄을 고려치 않은 모독이다”라는 등의 반감이 쏟아진다고 보도했습니다. 최근 현지 인식 조사에선 ‘고인을 AI나 CG(컴퓨터 그래픽)로 부활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전체 77%였다고 합니다. “고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기에”란 이유였습니다.
‘남의 슬픔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뉴지아 측은 “슬픔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슬픔에 기대는 것”이라며 “(유족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사자 윤리를 연구하는 사토 케이스케 일본 조치대 교수는 “(슬픔이 깊은 유족일수록) AI 고인에게 의존하거나, 재현 퀄리티가 낮으면 ‘만나고 싶다’는 슬픔이 더 강해져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도 “다만 고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족에게 큰 의미라는 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자는 계속 늘어갑니다. 일본 사망자 수는 오는 2040년 166만5000명으로 피크를 찍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마이니치신문은 “고인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계속해서 남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도요게이자이신문은 “AI 고인이 주는 경외감은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이란 금기를 파고드는 행위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전했습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AI 고인은 치유일까요, 모독일까요. 윤리라는 벽을 넘고 통용될 수 있을까요.
하나 확실한 것은 AI가 그 어떤 문제에 한해서라도 직접 책임질 일은 없다는 겁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현해탄 건너 당신이 궁금해 할 일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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