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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에 반대한다! 서울시립미술관 규탄한다!”
미술관 2층에서 젊은 작가 두 사람이 외친 구호는 낭랑한 주문처럼 울려퍼졌다. 뒤이어 노란색 유인물이 1층으로 뿌려졌다. 그곳에선 신내림과 영혼의 강림을 예술가의 눈으로 조명하는 국제미술축제 개막 행사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꽃비처럼 내린 유인물을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주워 읽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홀에서 펼쳐진 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 서브프라임동영상 령: 영혼의 기술’ 개막 행사 풍경은 미술관의 검열 행태에 항의하는 돌발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아로새겼다. 퍼포먼스는 지난 3~7월 진행한 서울시립미술관 아카이브 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의 도록 평론 글 검열 배제 사태를 꼬집는 내용이었는데, 이 비엔날레의 핵심 개념인 ‘강령’과도 묘하게 아귀가 들어맞았다. 망자의 혼을 부르는 제의를 현대저축은행 채은혜 뜻하는 ‘강령’에 걸맞게 배제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탐구한 작품들이 골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개막한 지난달 25일 오후 행사장인 서울시립미술관 2층 난간에서 청년 작가 두명이 미술관 쪽 전시 검열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리고 있다. 농협 비과세 복리 아래 1층에 축하객들과 축사하고 있는 최은주 관장의 뒷모습이 보인다.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연대 제공


최은주 관장이 인사말에서 “공립미술관 가운데 가장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미술관”이라고 자부심에 찬 발언을 하는 즈음 작가들이 감행한 구호 외치기와 유인물 배포 행위를 두고 참석한 미술인들은 “미술관과 도와드립니다 작가가 사전에 기획한 기념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퍼포먼스가 펼쳐진 1층 홀과 2층 난간 사이에 뱀을 알몸에 걸치고 피 흘리는 망자의 머리통을 든 18세기 마녀의 대형 그림(요하나 헤드바 작가의 재현 작품)이 내걸린 모습도 흥미진진한 비교 감상 거리였다.
이번 비엔날레는 근현대 미술사에서 사람들의 영적인 경험이 예술가들에 취업후상환학자금대출 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영화, 영상, 사운드,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해 더듬어본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20세기 초 추상회화의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에게 영감을 준 신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드로잉으로 시작하는 전시는 19세기 영적 존재와 교감하는 양상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한 조지아나 하우튼의 그림들과 선적인 세계와의 교감을 드러낸 백남준의 ‘티브이 부처’(1989) 등을 보여주며 서막을 연다.



중남미 작가 과달루페 마라비야가 자신의 이주 경로를 되짚는 의식을 통해 수집한 물건들로 엮은 설치 조형물 ‘질병 투척기 #17’(2021). 노형석 기자


출품작들은 분홍빛의 독특한 색조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심령과 영적 세계에 대한 작가들의 탐구와 더불어 20세기 이래 기술공학이 영혼의 경지와 어떻게 접맥됐는지 등을 보여준다. 대만 작가 슈 챠웨이는 양면 영상 ‘영혼 기록’(2016)을 통해 대만 변두리 섬 주민들이 개구리 신에게 새 사당을 지을 장소를 알려달라고 비는 장면을 틀어주면서 영상 뒷면에는 새 사당 조감도를 디지털 기술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술이 영적 주술 행위와 절연되지 않고 공존하는 진실을 전하는 셈이다. 고대 중국 도가 문헌 내용을 바탕으로 춤추는 로봇 무당 4기를 등장시킨 권병준의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2025)도 기술 기반 예술이 고도의 인문적 성찰, 현상 너머의 세계로 상상의 가지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봇 무당의 제의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권병준 작가의 키네틱 설치 작품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2025). 노형석 기자


카라빙 필름 콜렉티브는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영상 ‘가족과 좀비’(2021)를 통해 선조들의 땅에서 수맥을 끌어내 쓰려는 백인을 좀비로 보고 선주민들의 제례의식을 다루면서 색다른 심령적 맥락에서 식민 침탈사를 다룬다. 타이 영화감독 아노차 수위차콘퐁의 신작 영상 ‘서사’는 2010년 군부의 시위대 학살 당시 유족이 진상 규명에 미온적인 타이 정부에 맞서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사회의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이 어떻게 역사적인 상처를 삭이고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적 시선을 보여준다.



먹고 남은 닭뼈들을 엮어 만든 어니스트 A. 브라이언트 3세 작가의 조끼 모양 조형물 ‘비행 재킷’. 노형석 기자


이번 비엔날레는 뉴욕에서 작가·기획자·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가 예술감독 팀을 꾸려 만들었다. 이 비엔날레는 10여년 전에도 ‘귀신, 간첩, 할머니’란 주제로 영적 세계를 다룬 바 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집중적이고 심화된 주제의식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최근 세계 현대미술계의 중요한 흐름이 된 심령적 상상력은 기술의 힘을 입고 페미니즘, 생태학, 반자본주의의 지평까지 확대되는 최전선의 관심사임을 기획진은 독특한 구성을 통해 일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본전시 외에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청년예술청 등에서도 사운드, 영화, 퍼포먼스 실연회 등 딸림 행사들이 꾸려진다. 11월23일까지.



영적 세계를 떠도는 무사들의 대결을 담은 제인 진 카이젠의 단채널 영상물 ‘도깨비’(2024).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