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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슈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해저 탄광이 있었다. 1914년 가동을 시작할 때부터 위험한 사업장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1942년 2월3일, 갱도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서 일하던 광부 183명이 바닷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희생자 중 136명(74.3%)이 한반도 출신 노동자였다. 사고 다음 날 짧은 속보가 전해졌을 뿐 오랫동안 사고의 진상은 묻혀 있었다. 탄광을 운영하던 회사는 유골을 수습하지 않고 갱도를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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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뒤늦게 어두운 역사를 알게 된 일본 시민들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희생자 이름을 새긴 추모비를 건립하려 했는데, 조선인 희생자들을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존엄을 침해한다고 생각했다. 편지 118통을 한국과 북한의 유족들에 하나은행 채용 게 보냈다. 답장을 17통 받았다. 그렇게 결성된 한국 유족회와 오랜 시간 교류하며 2013년 추모비 건립에 성공했다.




조세이 탄광의 예전 모습. 석탄을 배로 실어 나르고 있다. 오른쪽에 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보인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무료신용정보조회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새기는 모임’ 회원들이 추모비를 세우고 기뻐하고 있을 때, 한국인 유족이 ‘이대로 운동을 끝낼 것이냐’고 물어왔다. ‘희생자의 유골을 찾아서 고향으로 모셔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새기는 모임’은 2014년부터 ‘유골을 수습해 유족에게 중도상환모기지론 돌려주기’를 첫 번째 목표로 전환해 활동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와 교섭했지만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했다. 바닷속이라 유골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조사 작업의 안전성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2024년 2월, ‘새기는 모임’은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유골 발굴과 수습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에 나서기로 했다. 3회에 걸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일본 시민들로부터 5000만 엔(약 4억6800만원)에 이르는 돈을 기부받았다. 그 자금으로 8월8일 현재까지 다섯 차례 잠수 조사를 실시했다. 6월17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금까지 뼈로 보이는 것을 두 번 발견했으나, 야마구치현 경찰은 감정 결과 사람의 뼈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9월25일, 파괴된 잔해와 쓰레기에 파묻혀 있던 갱도의 입구를 발견했다. 높이 160㎝, 폭 220㎝로 성인 한 명이 몸을 구부려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희생자들이 탈출하기 위해 향했던 공간인 갱도 입구가, 사고 82년 만에 열린 것이다. 이사지 요시타카 씨 등 잠수부들이 지난해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갱구를 통해 본갱도로 잠수해 들어갔으나, 갱도가 붕괴되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새기는 모임’은 본갱도로 이어지는 다른 경로를 발견했다. 바다 위로 우뚝 솟아 있는, 현지인들이 ‘피야(pier)’라고 부르는 배기탑을 통해 본갱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배기탑 안에 각종 오물이 쌓여 있어서 그걸 걷어내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




잠수부들이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골을 찾기 위해 ‘피야’라 불리는 배기탑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새기는 모임’의 유골 수습 프로젝트는 최근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먼저 그동안 소극적이던 일본 정부 태도가 변했다. 올해 4월,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일본 사회민주당의 오쓰바키 유코 의원이 조세이 탄광 유골 조사에 국가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하자,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국가로서 어떤 지원을 해야 할지 정부 내에서 검토하고 싶다”라고 답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서 처음으로 나온 전향적 답변이다. 이후 일본 후생노동성은 잠수·구조물·광산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8월23일에는 이시바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75), 우에다 게이시 사무국장(67), 그리고 ‘일본 조세이 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양현 회장(78)은 8월12일 서울 종로구 낙산 묘각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양국 정상이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골을 발굴하는 데 함께 협력할 것을 결의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일본 정치 상황이라는 게 한국 여러분들께 절망만 안겨드렸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자민당 내에서 이 문제에 책임을 느낀다고 발언한 이시다 총리가 재임하는 동안에 어떻게든 정치적 결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7월10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고도 밝혔다.




잠수 뒤 수면으로 너무 빨리 올라오면 잠수병에 걸릴 수 있어 대기 장소에서 감압 조치를 하고 있는 모습.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한국분들에게 힘 빌려달라 하기 죄송”

‘새기는 모임’이 맞닥뜨린 또 하나의 벽은 자금이다. 이제까지는 일본 시민들이 기부한 5000만 엔으로 잠수 조사를 해왔다. 오는 8월25~27일 한국과 일본의 잠수사들이 공동으로 잠수 조사를 하고 나면 지금까지 모인 돈이 모두 고갈된다. ‘새기는 모임’은 내년 1월 중순부터 2월 초에 걸쳐 3주간 잠수 조사를 할 계획이다. 잠수사와 유족들이 오가는 여비를 대고,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해 바닷속 곳곳에 산소통과 대기 장소를 설치하며, 저체온증을 막는 히터 부착 잠수복을 구입하고 배기탑과 갱도의 잔해를 제거하는 모든 과정에는 비용이 든다.


‘새기는 모임’은 8월19일 도쿄에서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교섭을 진행했다. 모든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3000만 엔(약 2억8000만원)의 추경예산 등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에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한국인 잠수사에 대한 지원과 한국 유족회의 방일 비용 지원을 요청하려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민간기업과 시민들도 모금에 함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새기는 모임’이 9월에 법인격을 얻을 계획이어서, 그간 이 모임에 기부와 추모제로 연대해온 대한불교관음종을 통해 모금을 진행한다(후원 계좌: (재)대한불교관음종, 우리은행 1006-501-377562).




8월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우에다 게이시 사무국장이 잠수 조사의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노우에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의 아버지도 전쟁에 참여했다가 한쪽 눈을 실명했다. 일본 정부는 상이군인들에게 연금으로 후하게 보상했고 자신도 그 혜택을 누린 사람이라며, 같은 일본 정부가 조세이 탄광 조선인 희생자에 대해서는 유골마저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말했다. “일본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저희의 힘이 부족해서 한국분들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렇지만 가해국 일본의 시민과 피해국 한국의 시민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기는 모임’이 유족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듬해인 1992년에는 한국인 유족 57명이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현재 생존한 직계가족은 4명뿐이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지금 여든여섯 살이 된 한 유족은 자신이 죽으면 조세이 탄광이 있던 바다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유언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분이 살아계시는 동안에 아버님의 유골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노우에 공동대표의 말이다. 세계 각지의 잠수사를 초청해 팀을 만들고, 사고 현장을 포함한 조세이 탄광 갱도 전체를 조사해 모든 유골을 수습하는 게 ‘새기는 모임’의 목표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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