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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도권’ 철학교육 뒤 학자 아닌 사상가로“현실의 강박이 부르짖음을 심장으로 들어야”“사회적 모순 극복 위한 ‘역사적 실천’ 강조한 손에 변증법, 한 손에 총…파르티잔 투쟁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지배하던 식민지 시절, 동학과 더불어 시대와의 철학적 대결을 이어간 사상은 사회주의 사상이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드러난 시대를 맞아, 사회주의 사상은 (심지어 하이에크 같은 인물조차도 젊은 시절 이 사조에 끌렸을 정도로) 당대 지식인들의 일반 문법이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사상의 지형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주의인지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식민지 조선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가 주류를 이루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제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서 식민지들에 대한 공감을 표했고, 이 때문에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했다. 당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철학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로서 신남철과 박치우가 손꼽힌다. 이들은 역사의 격랑을 가로지르며 자신들의 체험을 철학화했고, 이후 한국주택공사 채용 에도 전개될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초석을 만들어냈다.
1926년에 창설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철학과는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현대적인 형태의 철학교육 기관이다. 동학의 철학과 조선 사회주의의 철학은 제도권 철학과 무관하게 특정한 역사적 현실에서 형성되었던 사상적 운동이었다. 이 철학들은 좁은 의미에서의 철학이라기보다는 종교와(동 내 신용등급조회 학의 경우) 정치의(사회주의의 경우) 사상적 알갱이로서 의미를 띠었던 사유들이었다. 이와 달리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는 최초로 제도적인/전문적인 철학 교육을 위해 설치된 장소였고, 이곳의 1회 졸업생이었던 박치우, 신남철, 박종홍 등은 전문적인 철학 훈련을 받은 첫 세대 철학자들이다. 이 세 사람은 공히 현대 한국 철학사에 결정적인 족적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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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대 예과 시절 축구부 사진(앞줄 왼쪽 두번째가 박치우). 도서출판 길 제공


이렇게 보면 박치우(와 신남철)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박치우는 이 제도적 공간에서 철학적 훈련을 받았으나, 이후 그 공간을 의도적으 현대카드 로 탈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초로 제도권/전문 철학자를 길러내는 기관에서 공부했지만 스스로 그 공간 바깥으로 나아갔다. 그로써 그는 학자-철학자의 길이 아니라 사상가-철학자의 길을 택했다. 학자와 사상가 사이에 날카로운 금을 그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는 분명 구분되며, 박치우는 사상가를 “현실의 강박, 현실이 그의 해결을 위하여 우리를 향하여 부르짖고 있는 그 소리를 ‘심장’을 통하여 힘있게 들을 수 있는 인간”으로 이해한다.(‘아카데미 철학을 나오며’, 1936) 그가 일차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것이 ‘실천 개념의 철학적 해명’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치우가 당대의 현실 에서 ‘심장’을 통하여 힘있게 들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위기’였다. 그에게 당대는 위기의 시대로 다가왔다. 그의 위기의식은 절박했다. “위기에 있다는 것, 위기에 산[生]다는 것, 위기와 싸워야 한다는 것, 이것들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부과된 불가피한 운명이다.”(‘위기의 철학’, 1934)
위기의 ‘기’(機)는 시간의 지도리이다. 역사에서의 시간의 지도리에 설 때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 하고 싸움으로써 그것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박치우는 자신의 시대가 바로 그러한 운명에 맞닥뜨린 시대라고 생각했다.



박치우의 유일한 저서인 평론집 ‘사상과 현실’. 도서출판 길 제공


박치우는 위기를 세가지 성격을 통해 파악한다.
그 하나는 위기에 있어서의 ‘모순의 생동성’이다. 이는 육박해 오는 위기를 단지 객관적인 학문적 대상으로서 관조하기보다 교섭적으로 파악할 때, 즉 파토스를 가지고서 그것을 마음 깊이 느낄 때 드러나는 생동성이다. 그 둘은 위기에 있어서의 ‘모순의 사회성’이다. 위기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위기를 단지 자연적인 과정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의 산물로 맞닥뜨릴 때 모순의 사회성이 드러난다. 이 사회적 모순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심각하게 흔드는 협위(脅威)로서, 적(敵)으로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과 자신 사이에 심각한 모순과 당착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사회적 모순이 다시 자기와의 모순으로서 파악될 때, 위기의 세번째 성격인 ‘모순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이는 곧 사회적 모순과의 모순, 모순과의 모순이다. 결론적으로 위기란 “객체적 모순이 주체적으로 파악되는 특정의 시기”이다.
그렇다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박치우는 모순을 붙들고서 치열하게 싸우는 실천을 역설한다. “모순의 극복은 다만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실천은 위기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 기반해야 한다. 로고스에 입각한 올바른 사태 인식에 기반해서만 파토스를 동반하는 실천은 올바른 실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박치우가 해야 할 일은 당대의 위기의 실체를 철저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 파악의 근거 위에서 역사적 실천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박치우가 당대의 위기를 초래한 핵심으로서 지목한 것은 파시즘, 더 넓게는 전체주의였다. 그의 정치철학은 첫째, 파시즘적 전체주의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둘째, 자유주의의 의의를 일정 정도 인정하되 그 한계를 비판한 위에서, 셋째, 사회주의에의 지향을 역설하는 구도를 띤다(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에게 스탈린 정권의 전체주의는 잘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박치우는 철학자답게 이러한 논의를 논리적 분석의 방식으로 전개한다. 다시 말해, 그는 전체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를 그것들을 떠받치는 논리적 토대를 드러냄으로써 비교한 것이다.



박치우의 연재 ‘자유주의의 철학적 해명’ 및 그의 사진이 게재된 신문 지면(조선일보 1936년 1월1일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박치우는 전체주의의 논리적 기초를 ‘신비적 유기체설’로 특징짓는다. 전체주의 정치체제 아래에는 전체와 부분(또는 하나와 여럿)이라는 논리학적/존재론적 문제가 깔려 있다. 전체주의란 부분들에 대한 전체의 우위, 전체에 대한 부분들의 복속을 기본 테제로 한다. 전체주의 체제란 곧 국가를 전체로서 정립하고, 국가 내의 부분들을 이 전체에 복속시키려는 체제이다(똑같은 논리를 보다 넓게 적용하면, 국가들이라는 부분은 인류/세계라는 전체에 복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자들은 이 방향에는 완강히 저항하며, 이 점에서 전체주의 체제는 애초에 논리적 모순을 품고 있다. 변증법을 가지고서 이 모순과 집요하게 싸우면서 ‘종(種)의 논리’를 전개한 인물이 ‘다나베 하지메’이다).
이런 논리는 서구 중세를 풍미했던 ‘보편자 실재론’과 ‘하이어라키’ 사상에 입각해 전체주의를 전개한 가톨릭 파시스트 오트마어 슈판에게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박치우는 전체주의의 결정적인 논리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같은 파시스트 이론가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는 신비적 유기체설이라고 보았다.
유기체설은 생물학적 은유를 동원해 부분들을 전체에 종속시키는 대표적인 이론으로서, 그 연원이 꽤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유기체설로써는 전체주의를 밀고 나가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파시스트들은 “피와 흙”(Blut und Boden) 같은 선정적이고 강박적인 신화를 동원하게 된다. “숭고한 조국애, 순정 무구한 동족애, 이 같은 현상은 이 ‘피의 영감’을 가져오지 않고서는 설명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전체주의의 논리적 기초’, 1941) 전체주의자들은 이런 신비적 유기체설을 동원해 개인들과 집단들을 사정없이 후려친 것이다.



박치우의 연재 ‘전체주의의 철학적 해명’이 게재된 신문 지면(조선일보 1939년 2월24일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전체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는 공히 20세기 전반에 팽배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체제들이다. 이 중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내적으로 개량하고자 했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바깥에서 그것을 타도하고자 했다. 그리고 전체주의는 자본주의 극복은커녕 더욱더 거대한 참극들을 낳기에 이른다. 박치우는 자유주의의 논리적 기초를 ‘일대일 대응’이라 보았다.
일대일 대응의 논리는 곧 형식논리학의 논리이다. 형식논리학의 핵심은 동일률과 모순율에 있다. 동일률은 한 개별자의 동일성을 떠받치는 논리이고(“A는 A이다”), 모순율은 한 개별자와 다른 개별자들 사이의 분리를 떠받치는 논리이다(“A는 非(비)A가 아니다”). 그러나 박치우는 이러한 논리는 현실적인 것(das Reale)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념적인 것(das Ideale)에서 성립하는 것일 뿐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일대일 대응은 이념적인 차원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근대 시민사회,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런 논리에 입각한 개인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이는 사실 원자적인 개인을 발견한 것일 뿐이다(“나는 나이다, 나는 非-나가 아니다”). 실제 사회는 유산자와 무산자의 차별의 구조에 입각해 있다. 일대일 대응은 이 차별을 덮어버리려는 형식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이 논리는 “공평의 ‘픽션’(허구)일 수는 있어도 공평의 현실일 수는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일대일과 형식논리’, 1946)



태백산 전투에서 ‘적의 괴수’ 박치우를 사살했다는 단신 기사가 실린 신문 지면(동아일보 1949년 12월4일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그렇다면 박치우가 지향했던 사회주의 정치체제 ―박치우의 표현으로 “근로 인민 민주주의”―는 어떤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변증법적 논리’이다. 박치우는 헤겔의 변증법을 거부한다. 헤겔의 변증법이 전체주의의 유기체설과 유사한 사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양자는 수준을 달리한다. 유기체설은 처음부터 부분들에 대한 전체의 우위, 전체에 대한 부분들의 복속을 전제하는 사상이지만, 헤겔의 변증법은 ‘부정의 운동’을 통해 모순들이 극복되면서 더 상위의 역사적 수준으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정의 운동이 애초에 전제되는 어떤 궁극의 점(‘절대정신’)으로의 목적론적 이행을 사전 프로그램으로서 장착하고 있는 한, 결국 그것은 유기체설과 유사한 형태로 귀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치우에게 변증법이란 모순과의 ‘실제’ 투쟁 여하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지는 열린 과정이며, 투쟁의 결과에 따라 변해 가는 과정일 뿐 정해진 경로는 없다. 다만 ‘당위’로서 “능력에 의해서 노동하며 노동에 의해서 분배하는” 정체를 향해 나아갈 뿐인 것이다.
그러나 박치우는 이 변증법적 논리를 정교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월북한 뒤 몇년 후에 태백산에서 파르티잔(‘빨치산’) 대장으로 내려와 투쟁하다가 전투 중에 사살당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떠올려지는 철학자의 죽음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오히려 박치우 그의 삶에서 보면 무척이나 일관된 것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위기의 시대에 궁극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역사적 실천에 뛰어드는 것”에 다름 아니었기에 말이다. 오직 주체의 실천에 의해서만 변증법의 행로가 결정되는 것이라 했기에 말이다. 한 손에는 변증법을,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고서 역사의 격랑을 헤쳐 간 박치우의 사유와 실천은 현대 한국 철학의 결정적인 한 장면으로서 지금까지도 울림을 주고 있다.



철학자 이정우.



철학자 이정우 l 서울대학교에서 미셸 푸코로 학위를 받았다. 대안공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시민 강좌를 열었고, 지금은 소운서원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철학사’ 4부작(2011~2024)을 펴냈고, 현재는 ‘소운 철학 대계’를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