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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규용남 작성일24-12-27 08:11 조회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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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치료제부작용 ◗ 시알리스구매 사이트 ◗● 13.cia948.com ㎎윤석산 천도교 교령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수운회관 교령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의 요청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5월 천도교 최고 지도자인 교령에 취임한 윤석산(77) 한양대 명예교수는 동학과 천도교 전문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가 1987년 모교인 한양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은 동학 경전 ‘용담유사’를 다룬 국내 1호 박사 논문이다. 1994년부터 2021년까지 네 번에 걸쳐 동학 경전 ‘동경대전' 주해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가 10년에 걸쳐 동학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사상과 행적을 좇아 펴낸 ‘일하는 한울님-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2013) 조회서비스 은 해월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동학 경전 판본이나 경주 용담 등 동학 성지를 연구한 논문들도 동학 연구자들의 필독 텍스트로 꼽힌다.
불명예 퇴진한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내년 3월까지 교령직을 수행하는 윤 교령은 최근 두 권의 출판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하나는 12년 전 나온 자신의 책 ‘동학 천 전세자금추가대출 도교의 통시적 고찰’(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을 새로 다듬어 개정판을 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문과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천도교 경전을 쉬운 우리말로 풀어 가로쓰기 편집으로 출판한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윤 교령을 만났다.



‘동학 천도 미즈사랑 교의 통시적 고찰’





68년 만에 나온 천도교 ‘새 경전’.


‘동학 천도교의 통시적 고찰’은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 등 동학·천도교의 스승들을 소개하고 종교적 성지나 경전을 긴말필요 고찰하는 글과 함께 해방 후 동학·천도교가 ‘현대 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울림을 주었는지 살피는 글들이 실렸다. 그는 개정판 서문에서 초판이 나온 뒤 동학·천도교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도 늘었지만, 오해와 곡해의 흐름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썼다. 이 때문에 자신의 책은 여전히 시대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했다. 1860년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은 1906 생활비대출 오류 년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라는 종교로 개편되었다.
그가 꼽은 오해나 곡해 중 하나는 서학의 반향으로 동학이 태어났다는 인식이다. “동학은 종교적 깨달음을 얻은 수운이 우리나라의 오랜 사유와 철학을 바탕으로 창도했는데도 마치 유·불·선이나 무속·기독교를 짬뽕해 논문 쓰듯 만들어졌다는 인식이 지금도 퍼져 있어요. 수운 선생은 글에서 한 번도 장점을 취했다는 뜻인 ‘합일’이란 말을 쓰지 않았어요. 대신 겸해서 나왔다는 뜻인 ‘겸출’이란 말을 썼죠. 우주적인 어떤 것을 깨달아 보니 유불선의 그런 점들이 있더라는 거죠. 수운 선생이 대구감영에서 취조받을 때도 ‘취동국지의’라고 ‘동학은 우리나라의 뜻에서 취했다’고 말했죠.”
그는 이런 오해에는 일제 어용학자들 탓이 크다고 했다. “일제 때 천도교가 3·1운동이나 6·10만세운동, 신간회 운동을 일으켜 지속해서 일제에 저항하니 경성제대 교수였던 일본인 어용학자들이 천도교는 동학에서 나왔는데 동학이 진짜 종교 맞냐면서 동학에 대해 유사종교라는 말을 씁니다. 가짜종교라는 거죠. 해방 후에도 이 어용학자들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주로 교과서를 만드니 그런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동학이 천도교로 종교화한 것을 두고 ‘변질’로 보는 세간의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뜻도 있다고 윤 교령은 밝혔다. “동학이 종교가 되면서 변질하였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천도교 시절에 오히려 독립운동을 더 많이 했고 문화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사실 수운 선생 때는 ‘종교’란 말 자체가 없었어요. ‘천도’라고 했죠. 의암이 새로 종교 의례로 ‘오관’(청수, 기도, 주문, 성미, 시일)을 정하지만 청수나 기도, 주문은 전부터 해온 것이고 ‘일요일 예배’인 시일은 앞서 특별한 날에 하던 제례를 일요일로 정한 거죠. 동학 시대엔 월화수목 이런 요일이 없었어요.”
그가 이번 책에서 “수운은 도의 학문화, 해월은 도의 생활화, 의암은 도의 종교화를 펼쳤다”며 셋을 동학·천도교의 스승으로 묶어 자세히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내 안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수운의 ‘시천주’ 사상에서 해월과 의암은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어요. 해월은 이를 응용해 생활철학으로 만들었고, 의암은 ‘일요일 예배’로 종교적 힘을 결집시켰죠.”
천도교 집안에서 난 윤 교령은 32살에 입교해 한양대 교수 시절인 30대 중반에 천도교 수도원에서 종교적 체험을 했고 그뒤 천도교 교서편찬위원장, 상주선도사를 지냈다. 고교 3학년 때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해 지금껏 ‘바다 속의 램프' 등 시집 12편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40여 년 연구한 동학 천도교 사상의 핵심으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조화와 균형의 삶’을 들었다. “해월 선생은 사인여천 즉 한울님 섬기듯 사람을 섬기라고 합니다. 바로 존중과 배려이죠. 이를 통해 이루려는 게 조화와 균형의 세상입니다. 수운과 해월은 한 번도 인간이 존귀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대신 신령하다고 합니다. 존귀하다면 남이 우러러봐야 하잖아요. 신령하다는 것은 내가 신령함으로써 남이 신령함을 아는 존재입니다. 같이 사는 걸 아는 거죠. 미물도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셔 신령하다는 것입니다. 동학·천도교는 인간 본위가 아니라 생명 본위 사상입니다. 지금 세상은 인본주의로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는 동학·천도교의 가르침은 현대 사회의 당면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지금 사회 갈등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태 파괴 역시 생명 존중 사상이 없어서죠.” 그는 이어 사물도 한울님, 사람처럼 공경하라는 해월의 경물 사상을 이야기했다. “사물도 한울님 이치에 따라 생겨났기에 쓰는 것도 그 이치대로 하라는 게 경물 사상입니다. 물이나 불 등 사물을 인간의 이기심이 아니라 그 사물의 이치대로 쓰라는 겁니다. 이는 최고의 도덕 경지에 이르는 길이죠. 천도교는 이처럼 부와 권력보다 더 높은 가치 기준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종교입니다. 또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심으로써 한울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을 세상의 가치 있는 삶으로 제시합니다. 이렇게 살면 모두에게 존중받을 수 있어요.”
이 말 뒤에 그는 무려 36년 동안 관군을 피해 도망 다녀 ‘최 보따리’라고도 불린 2대 교조 최시형을 떠올렸다. “해월은 조석거리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었지만 쫓겨 다니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모았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밝히는 게 제가 40대 때 숙제였어요. 36년 동안 해월의 소재를 관군에게 밀고한 제자는 단 1명도 없었어요. 마지막에 체포될 때도 밀고가 아니었어요. 의례(승통기념일) 제물을 갖다 주기로 한 이가 관군에게 잡히면서 위치가 발각되었죠. 제 숙제의 답은 해월이 한울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존경받았죠.”



윤석산 천도교 교령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천도교수운회관 교령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윤석산 천도교 교령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천도교수운회관 교령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천도교는 일제 때 국내 3대 종교의 반열에 들었지만 해방 이후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동학·천도교의 평등사상이나 생명 사상이 장일순이나 김지하 등에 의해 조명되면서 대중 속으로 서서히 퍼져나갔지만 교세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단다.
윤 교령이 진단한 천도교 쇠퇴의 가장 큰 이유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아서”이다. “천도교는 주문 수련을 통해 나를 바꿔나가는 종교인데요. 이를 지도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어요. 지도자들이 나오더라도 동학이나 천도교 시대의 사회운동이나 독립운동에만 관심을 가졌지 동학 본래의 종교적 특성을 개진시키지는 못했어요.”
그는 이런 천도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현대 사회에 부응할 수 있는 교리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이름으로 간행한 새 경전도 이런 노력의 하나라고 밝혔다. 1956년 나온 한글판 경전을 무려 68년 만에 손을 본 이 경전은 그를 포함해 다섯 교인이 2년 동안 초벌 번역한 것을 최성만 전 이화여대 독문과 교수 등이 4개월 동안 윤문한 결과물이다.
이 경전을 보니, 원문이 한문인 동경대전 입춘시를 ‘도의 기운을 길이 보존하여 삿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 세상의 뭇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으리라’라고 옮겼다. 현 경전 번역은 ‘도의 기운을 길이 보존함에 사특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간의 뭇사람과 함께 돌아가지 않으리라’이다. 원문의 뜻이 새 경전에서 좀 더 분명하다. 하지만 이 경전은 아직 교단의 정식 인정을 받지 못했다. “천도교의 존재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세상에 바르게 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단 사람들이 경전을 너무 엄중하게 생각해 손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새 번역도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보완해야죠.”
지난 몇 년 동학의 사상을 다룬 책과 문학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고 하자 그는 상당히 고무적이라면서도 우려도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신의 이름은 종교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는데도, 여러 연구자들이 동학·천도교의 신은 한울님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동학에서 한울님은 우주님이란 뜻입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있는 초월적 존재이지만 한울님은 내가 모시고 있으면서 또 그 기운으로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신을 지칭합니다. 하느님으로는 한울님의 의미를 다 담을 수 없어요.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월 때까지 하날님이라고 했고 의암 때 한울님으로 고쳤다고 하지만 제가 동학 자료를 들여다보니 해월 때도 한울님이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계획을 묻자 그는 “의암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상세히 들여다 보는 책을 쓰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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